③에르덴산트 · 초원 생활 (가난의 순례)
13년의 본당 사목과 3년의 안식년·연수를 마친 뒤, 김성현 신부님은 다시 에르덴산트의 초원으로 돌아왔습니다. 이번에는 성당을 짓기 위해서가 아니라, 가난 그 자체를 살아내기 위해서였습니다. 신부님 영성이 가장 깊어진 자리입니다.
왜 다시 초원이었나
항올 본당에서 신부님은 한 가지 벽에 부딪혔습니다. 세례받은 첫 세대 아이들이 일터로 나가 생업에 빠져들면, 어렵게 심은 신앙이 사라지는 것이었습니다. 신부님은 그 벽의 정체를 ‘자본주의’, ‘돈의 힘’이라고 보았습니다. 아이들에게 “돈이 행복의 전부가 아니다”라고 말하면서도, 정작 자신은 그 담장 안전한 쪽에 서 있다는 사실이 미안했습니다.
그 담장이 뭐냐, 돈이었습니다. 누가 넘어가서 돈 없어도 행복하다고 얘기했으면, 그 본보기를 누가 보여 줘야 되는가?
다큐멘터리 「사제는 누구인가」 중
그래서 신부님은 안식년을 청하고, 한국어 교사 자격증을 딴 뒤 초원으로 들어갔습니다. 성당을 짓지 않고, 신앙을 직접 전하지도 않고, 그저 마을에서 한국어를 무료로 가르치며 살았습니다. 가장 중요하게 여긴 것은 ‘주민들이 나를 자기네 이웃으로 받아들여 주는 것’이었습니다. 무언가를 갖추고 베푸는 사람이 아니라,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도움을 받는 이웃이 되는 것 ― 그것이 신부님의 방향이었습니다.
순례자로 사는 ‘천일’
초원의 신부님은 자신을 ‘순례자’라고 불렀습니다. 2013년 안식년을 시작하던 날부터 헤아린 특별한 숫자가 있었습니다.
천일 살자. 천일로 내 일생의 정말 마감이다. 그리고 저 진짜 그 천일이 끝나는 날 나를 데리고 가셔도 여한 없을 수 있도록 살자, 그렇게 죽자.
다큐멘터리 「사제는 누구인가」 중
아침마다 ‘오늘 순례 며칠째’라고 헤아리며, 매일을 일생의 마지막처럼 살고자 한 다짐이었습니다.
이곳에서 읽는 신부님의 글 ― 말 ‘좋다’와의 대화
초원의 묵상은 신부님의 글에 깊은 평화로 배어 나옵니다. 게르 곁에서 풀을 뜯는 말 ‘좋다’를 바라보며, 신부님은 자신의 기도를 돌아봅니다.
그를 있게 하신 분, 그에게 먹을 풀을 주시는 분이시니… 하느님의 현존 안에서 살아가고 있는 “좋다”가 제 눈에 들어온 것입니다.
마치 들꽃 한 송이가 온 존재로 하느님 안에서 자신을 피워내듯이 말입니다.
다녀오너라 — 「땅끝까지」 2019년 9-10월
돈을 빌려 달라는 이웃 앞에서
초원 생활은 늘 평화롭기만 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돈으로 선교하지 않겠다’는 다짐과, 어려운 이웃을 도와야 하는 현실 사이에서 신부님은 밤잠을 설치며 고민했습니다. 돈을 빌려 달라는 유목민 부부 앞에서 갈등하던 끝에, 신부님은 이렇게 마음을 정리했습니다.
첫 번째 부부의 문제는 염소 스무 마리를 사 줬다고 생각하렵니다. 그들이 힘 있는 권력가가 아니라서 다행입니다.
달라고 하면 누구에게나 주고 — 「땅끝까지」 2019년 7-8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