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부 · 김성현 신부님의 선교 영성
장소를 따라 걸으며 만난 신부님의 삶을, 이제 하나의 영성으로 모아 봅니다. 신부님의 영성은 ‘프라도 사제회’의 정신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으며, 그 핵심에는 ‘구유와 십자가와 감실’이 있습니다.
1. 프라도 사제 ― 가난한 이들을 위한 가난한 사도
김성현 신부님은 교구 사제이면서 동시에 프라도 사제회의 일원이었습니다. 프라도회는 1860년대 프랑스에서 복자 앙투안 슈브리에 신부가 창설한 공동체입니다. 산업혁명기, 부모가 공장으로 내몰리며 거리에 버려진 아이들을 위해 슈브리에 신부는 ‘프라도’라는 집을 마련하고 아이들과 함께 먹고 자며 하느님을 알려 주었습니다.
신부님은 울란바타르에서 거리의 아이들과 살며 자신이 창의적으로 그 일을 해냈다고 여겼지만, 훗날 프랑스 리옹의 프라도를 방문한 뒤 깨달았습니다. 그것을 자연스럽게 할 수 있도록 이끈 분이 바로 슈브리에 신부였다는 것, 자신은 결코 혼자가 아니었다는 것을 말입니다.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가난한 사도, 가난한 사람도 사도가 될 수 있다는 믿음. 노숙자 중에서도 사도가 나올 수 있고, 고아 중에서도 나올 수 있고, 노동자 중에서도 사도가 나올 수 있다.
다큐멘터리 「사제는 누구인가」 중
2. 구유와 십자가와 감실
슈브리에 신부가 남긴 ‘생퐁의 도표’는 예수 그리스도 생애의 가장 낮은 세 자리 ― 구유, 십자가, 감실 ― 를 그린 것입니다. 프라도 사제들이 자신의 성소를 살아가는 지향점입니다. 김성현 신부님의 삶은 이 세 자리로 고스란히 읽힙니다.
- 구유 — 갓난아기로 오신 예수님처럼, 초원에서 가장 가난한 모습으로 사신 삶.
- 십자가 — 자신을 바치신 예수님처럼, 몽골 교회를 위해 목숨까지 바치며 사랑한 열정.
- 감실 — 성체로 모든 것을 내어주신 예수님처럼, 매일 성체 앞에서 자신을 내어드린 봉헌.
신부님이 즐겨 바친 기도는 이 세 자리를 그대로 담고 있습니다.
구유에 누워 계신 당신처럼 헐벗은 사람, 십자가에 매달리신 당신처럼 십자가에 못 박힌 사람, 성체성사를 통해 모든 것을 내어주신 당신처럼 먹히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
프라도 사제의 기도
3. 강생의 영성 ― 받는 자리로 가는 용기
신부님의 선교는 ‘베푸는 선교’가 아니라 ‘함께 사는 선교’였습니다. 예수님이 전능한 모습이 아니라 갓난아기로 오신 까닭은, 인간의 마음에서 사랑이 흘러나오게 하기 위해서라고 신부님은 묵상했습니다. 그래서 선교사도 무언가를 베푸는 자리만이 아니라, 그들의 사랑을 받는 자리로 가기를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고 보았습니다.
선교지에 가서 그들의 사랑을 받는 자리에 간다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자.
다큐멘터리 「사제는 누구인가」 중
돈으로, 시설로, 사회복지로 사람을 모으는 일은 어렵지 않다고 신부님은 말했습니다. 그러나 그런 관계는 ‘돕는 사람과 도움받는 사람’이라는 설정을 넘어서기 어렵습니다. 신부님이 초원에서 한국어를 가르치며 가난하게 산 것은, 바로 그 설정을 넘어 ‘이웃’과 ‘친구’가 되기 위해서였습니다.
4. 아브라함 세대를 향한 사랑
신부님이 가장 마음 아파한 것은, 어렵게 신앙을 받아들인 첫 세대(‘아브라함 세대’) 아이들이 생업에 빠져 하느님을 잊는 것이었습니다. 부를 좇아 떠나는 것 자체가 아니라, 예수님을 잊어버리는 것이 신부님을 아프게 했습니다. 신부님은 끝까지 그들을 기다리는 ‘아버지의 마음’으로 살고자 했습니다. 떠난 이들도 언젠가 돌아오리라는 희망이었습니다.
5. 사제는 누구인가 ― 제2의 그리스도
신부님이 평생 붙들었던 물음, ‘사제는 누구인가’에 대한 답은 분명했습니다. 사제는 ‘제2의 그리스도(Sacerdos alter Christus)’입니다. 그분이 가시는 곳마다 따라가고, 그분이 하시는 것을 다 하며, 결코 그분을 떠나지 않는 것 ― 그것이 신부님이 이해한 사제의 길이었습니다. 신부님을 기억하는 이들은 입을 모읍니다. ‘이 사람은 복음대로 살려 했고, 복음의 힘을 믿은 사람이었다.’
“사제는 또 하나의 그리스도다.”